남명(南冥) 조식(曺植) |
1.남명선생 일대기(南冥先生 一代記) |
1. 남명선생 일대기(南冥先生 一代記)
선생의 휘(諱)는 식(植), 자(字)는 건중(楗仲),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남명은 선생의 호(號)이다. 선생의 증조부 안습(安習)은 생원이었는데, 이 때 비로소 서울로부터 경상도 삼가현(三嘉縣)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조부 영(永)은 벼슬살이를 하지 않았으니 그때까지 가세가 떨치지 못하였음을 알겠다. 부친 언형(彦亨)이 비로소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살이를 하게 되고, 숙부 언경(彦卿)도 문과에 급제하니 이 때부터 가세가 떨치게 되었다.
3. 덕천서원(德川書院)
8.시(詩) 부(賦)
9.상소문 선무랑(宣務郞)으로 새로 단성현감에 제수된 조식은 진실로 황공하여 머리 조아려 주상전하께 소를 올립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돌아가신 임금님(중종)께서 신이 보잘것없는 줄 알지 못하시고 처음에 신을 참봉에 제수 하셨습니다. 전하께서 왕위를 계승하셔서는 신을 주부에 제수한 것이 두 번이었고, 이번에 또 현감에 제수하시니 신은 떨리고 두려워 마치 큰산을 짊어진 것 같아 감히 인재등용에 정성을 쏟고 계시는 임금님 앞에 나아가 하늘의 해와 같은 그 은혜에 감사 드릴 수 없습니다. 신이 생각하건대, 임금이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마치 대목이 목재를 취해 쓰는 것과 같습니다. 깊은 산 큰 골짜기에 버려지는 재목이 없도록 모든 좋은 재목을 다 구해다가 훌륭한 집을 이루는 것은 대목에게 달렸지 나무가 스스로 참여할 일은 아닙니다. 전하께서 인재를 등용함은 한 나라를 맡아 다스리는 책임입니다. 전하의 인재를 등용하려는 큰 은혜를 감히 사사로운 일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만. 신은 혼자서 걱정되어 견딜 수 없는 지경이므로 신이 머뭇거리며 벼슬길에 나가기를 어려워하는 뜻을 전하께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이 벼슬길에 나가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신은 나이가 예순에 가깝고 또 학문이 엉성하면서도 어둡습니다. 신의 문장실력은 전날에 과거의 끝자리에도 끼지 못했고, 신의 행실은 물 뿌리고 비질하는 예절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과거에 합격하려고 10년 동안 노력했지만 세 번 실패하고서 그만두었으니 애초부터 지조 있게 과거를 일삼지 않은 사람도 아닙니다. 가령 과거 합격을 탐탁찮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조그마한 절개나 지키는 선량한 사람에 불과할 뿐 크게 나라를 위해 무슨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훌륭한 인재가 아닙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 훌륭한가 형편없는가 하는 것은 결코 과거에 합격하기를 바라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이 과거를 통해서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고 해서 신을 대단하게 보실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보잘것없는 신이 명예를 도둑질해서 담당관리의 눈을 속였고, 담당관리는 저의 거짓 이름을 잘못 듣고서 전하를 그르쳤습니다. 전하께서는 신을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십니까? 도(道)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문장에 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문장에 능한 사람이라고 꼭 도가 있는 것은 아니고, 또 도가 있는 사람은 신처럼 이렇지 않습니다. 전하께서 신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승도 또한 신을 알지 못합니다. 그 사람됨도 모르면서 그를 등용한다면 훗날 국가의 수치가 될 것이니 그 죄가 어찌 이 보잘것없는 신에게만 있겠습니까? 신이 거짓된 이름을 바쳐 몸을 팔아 벼슬에 나가는 것이 진짜 곡식을 바쳐 벼슬을 사는 것보다 어찌 나을 수 있겠습니까? 신은 차라리 이 한 몸을 저버릴 수는 있어도 전하를 져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신이 벼슬길에 나가기 어려워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전하. 나랏일은 이미 잘못되었고 나라의 근본은 이미 없어졌으며 하늘의 뜻도 이미 떠나버렸고 민심도 이미 이반되었습니다. 비유컨대, 큰 고목나무가 100년 동안 벌레에 속이 패어 그 진이 다 말라버려 언제 폭풍우가 닥쳐와 쓰러질지 모르는 지경에 이른 지 이미 오래입니다. 조정에서 벼슬하는 사람들 치고 충성스런 뜻을 가지고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일하지 않는 이 없지만, 나라의 형세가 아주 위태로워 사방을 둘러보아도 손 쓸 곳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낮은 벼슬아치들은 아랫자리에서 히히덕 거리며 술과 여색에만 빠져 있습니다. 높은 벼슬아치들은 윗자리에서 빈둥빈둥거리며 뇌물을 받아들여 재산 긁어모으기에만 여념이 없습니다. 오장육부가 썩어 물크러져 배가 아픈 것처럼 온 나라의 형세가 안으로 곪을 대로 곪았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직의 벼슬아치들은 자기들의 당파를 심어 권세를 독차지하려 들기를, 마치 온 연못 속을 용이 독차지하고 있듯이 합니다. 외직에 있는 벼슬아치들은 백성 벗겨 먹기를, 마치 여우가 들판에서 날뛰는 것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죽이 다 없어지고 나면 털이 붙어 있을 데가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백성을 가죽에 비유한다면 백성으로부터 거두어들이는 세금은 털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신이 자주 낮이면 하늘을 우러러 깊이 탄식하고 밤이면 천장을 바라보고 답답해하며 흐느끼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대비(문정왕후)께서는 신실하고 뜻이 깊다 하나 깊은 구중궁궐의 한 과부에 불과하고, 전하는 아직 어리니 다만 동아가신 임금님의 한 고아에 불과합니다. 백 가지 천 가지로 내리는 하늘의 재앙을 어떻게 감당하며 억만 갈래로 흩어진 민심을 어떻게 수습하시겠습니까? 냇물이 마르고 하늘에서 곡식이 비처럼 떨어지니 하늘의 재앙은 이미 그 징조를 보였습니다. 백성들의 울음소리는 구슬퍼 상복을 입은 듯하니 민심이 흩어진 형상이 이미 나타났습니다. 이런 시절에는 비록 주공(周公)같은 분의 재주를 겸하여 가진 사람이 대신의 자리에 있다 해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풀잎이나 지푸라기처럼 보잘것없는 신 같은 사람이겠습니까? 신은 위로는 만에 하나라도 나라의 위태로운 사태를 붙들 수 없고 아래로는 털끝만큼도 백성들을 보호랄 수 없으니 전하의 신하되기는 또한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조그마한 헛된 이름을 팔아서 전하께 벼슬을 얻는다 해도 그 녹을 먹기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신이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이점이 신이 벼슬하러 나가기 어려워하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또 신이 요사이 보니 변경에 일이 있어(왜구의 침략으로 전라도 일대가 함락된 을묘사변을 말함) 여러 높은 벼슬아치들이 제때 밥도 못 먹을 정도로 바쁜 모양입니다만, 신은 놀라지 않습니다. 이 일이 벌써 20년 전에 일어날 일인데도 전하의 신성한 힘 때문에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발발한 것이지 하루아침에 갑자기 발발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조정에서 뇌물을 받고 사람을 쓰기 때문에 재물은 쌓이지만 민심은 흩어졌던 것입니다. 결국 장수 가운데 자격을 갖춘 자가 없고 성에는 수성할 군졸이 없으므로 왜적이 무인지경에 들어온 것입니다. 어찌 이상한 일이겠습니까? 이번 사변도 대마도 왜놈들이 몰래 결탁하여 앞잡이가 되었으니 만고에 씻지 못할 큰 치욕입니다. 전하께서는 영묘함을 떨치시지 못하고서 그 머리를 재빨리 숙였습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 대해서 신하로 복종하던 대마도 왜놈들을 대접하는 의례가 천자의 나라인 주나라를 대접하는 의례보다 더 융숭합니다. 원수인 오랑캐를 사랑하는 은혜는 춘추시대 송나라보다 한술 더 뜨십니다. 세종대왕 때 대마도를 정벌하고 성종대왕 때 북쪽 오랑캐를 정벌하던 일과 비교하여 오늘날의 사정은 어떻습니까? 그러나 이런 일은 겉으로 드러난 병에 불과하지, 가슴속이나 뱃속의 병은 아닙니다. 가슴속이나 뱃속 병은 덩어리지고 막혀서 아래위가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랏일을 맡은 공경대부들이 이 문제점을 해결해보려고 목이 마르고 입술이 타 들어갈 정도로 열심히 노력하였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아, 백성들 가운데 수레가 있는 이들은 수레를 타고 피난 가고 수레가 없는 이들은 달려서 피난가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에게 호소하여 군사를 불러모아 전하를 위해 부지런히 일하게 하고 나랏일을 정리하는 것은 자질구레한 형벌제도 따위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오직 전하의 마음 하나에 달려있습니다. 마음을 극진히 하면 그 효과를 크게 기대할 수 있는바, 그 틀은 전하에게 달려 있을 따름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전하께서는 무슨 일에 종사하시는지요? 학문을 좋아하십니까? 풍악이나 여색을 좋아하십니까? 활쏘기나 말타기를 좋아하십니까? 군자를 좋아하십니까? 소인을 좋아하십니까? 전하께서 좋아하시는 것이 어디 있느냐에 나라의 존망이 달려 있습니다. 만약 하루라도 능히 새로운 정신으로 깨달아 분연히 떨쳐 일어나 학문에 힘을 쏟으신다면, 하늘이 부여한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날로 새롭게 만드는 일에 얻으시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하늘이 부여한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만드는 일 안에 모든 착한 것이 다 포함되어 있고, 모든 교화도 거기로부터 나옵니다.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을 거행한다면 나라는 고루 잘 다스려질 것이고 백성들은 화합하게 될 것이며 나라의 위기도 안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을 요약해서 잘 간직한다면 사람을 알아보거나 일을 판단함에 거울처럼 맑고 거울처럼 공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어질 것입니다. 불교에서 이른바 진정(眞定: 참된 경지의 선)이라 하는 것도 단지 이 마음을 간직하는 것에 있을 따름입니다. 위로 하늘의 이치를 통달함에 있어서는 유교나 불교가 한가지입니다만, 일에 적용할 때 불교는 그 발디딜 곳이 없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 유가에서는 불교를 배우지 않습니다. 전하께서는 이미 불교를 좋아하고 계신데 그 불교를 좋아하시는 마음을 학문에 옮기신다면 공부하는 것이 우리 유가의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은 마치 어려서 집을 잃은 아이가 그 집을 다시 찾아 부모. 친척. 형제나 옛 친구 등을 만나보게 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더욱이 정치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전하 자신의 경험으로 인재를 선발해 쓰시고 도로써 몸을 닦으십시오. 전하께서 사람을 취해 쓰실 때 솔선수범 하신다면 전하를 가까이서 모시는 신하들이 모두 사직을 지킬 만한 사람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사람을 취해 쓰실 때 눈으로 본 것만 가지고 하신다면 곁에서 모시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전하를 곡이거나 져버릴 무리로 가득 찰 것입니다. 그런 때가 되면 굳게 자기 지조라도 지키는 고견 좁은 신하인들 어찌 남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뒷날 전하께서 정치를 잘하셔서 왕도정치의 경지에까지 이르신다면, 신은 그런 때에 가서 미천한 말단직에 종사하며 심력을 다해서 직분에 충실하면 될 것이니 어찌 임금님 섬길 날이 없기야 하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반드시 마음을 바로잡는 것으로서 백성을 새롭게 하는 바탕을 삼으시고, 몸을 닦는 것으로서 인재를 취해 쓰는 근본을 삼으셔서, 임금으로서의 원칙을 세우십시오. 임금이 원칙이 없으면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게 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전하께서 신의 상소를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신은 두려워 어쩔 줄 몰라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나이다.
경상도 진주에 사는 백성 조식(曺植)은 진실로 두려운 마음으로 삼가 절하고 머리 조아리며 주상전하께 아룁니다. 보잘것없는 신은 더욱 노쇠하고 병이 깊어 입으로는 먹고 싶은 생각이 없고 몸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합니다. 부르는 임금님의 명이 거듭 내려와도 곧바로 달려갈 수가 없고,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듯 임금을 향한 생각은 간절해도 길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신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임금님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겠기에 감히 속마음을 다 쏟아 임금님께 아룁니다. 주상전하께서는 상등 가는 지혜를 타고나셨고 또 정치를 잘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계십니다. 이것은 진실로 백성과 국가의 복입니다. 정치를 하는 방법은 다른 데서 구할 것 없고, 다만 임금이 착한 것을 밝히고 몸을 정성스럽게 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른바 착한 것을 밝힌다는 것은 이치를 궁구하는 것을 말함이요, 몸을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몸을 닦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본성 안에 온갖 이치가 다 갖추어져 있사오니 인의예지가 곧 그 주체입니다. 온갖 착한 것이 여기로부터 나오게 되니 마음이란 곧 이치가 모여 있는 주체인 것입니다.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입니다. 이치를 궁구하는 것은 장차 쓰기 위해서이고, 몸을 닦는 것은 장차 도를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치를 궁구하는 방법은 글을 읽어 이치를 밝히고 사물에 응함에 있어 그 당연한 길을 구하는 데 있습니다. 몸을 닦는 방법은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않는 것입니다. 안으로 마음을 간직하여 홀로 있을 때를 삼가면 큰 덕을 이룰 것이고 밖으로 살펴서 힘써 행하면 왕도정치가 될 것입니다. 이치를 궁구하고 몸을 닦고 마음을 간직하고 살피는 큰공은 반드시 경(敬)으로써 주를 삼아야 합니다. 이른바 경이란 가지런히 하고 엄숙히 하여 마음이 깨어 흐릿하지 않는 상태로서 마음을 주재하고 온갖 일에 응하는 것입니다. 경으로써 마음을 바르게 하고 행동을 반듯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자가 말한 "자기를 닦는데 경으로써 한다"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경을 주로 하지 않으면 천하의 이치를 궁구할 수 없습니다. 이치를 궁구하지 않으면 사물의 변화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마치 부부 사이에서 다스리는 실마리가 싹터서 가정과 국가, 나아가 천하를 다스리는 데로 확장되어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이치도 단지 착하고 악함을 구분하여 내 몸을 정성스럽게 만드는데 있을 따름입니다. 아래로 인간의 일을 배워 위로 하늘의 이치에 통달하는 것이 또 그 공부하는 차례입니다. 인간의 일은 내버려두고서 하늘의 이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입에 발린 이치일 뿐입니다. 자신에게서 반성해보지 않고 들어 아는 것이 많은 것은 귀 언저리의 학문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늘의 꽃이 어지러이 떨어진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에는 몸을 닦는 이치가 전혀 없습니다. 전하께서 과연 능히 경으로써 자신을 닦아 하늘의 덕에 통달하고 왕도정치를 행하여 반드시 지극히 착한 경지에 머무를 수 있다면, 착한 것을 밝히고 몸을 닦는 일이 아울러 이루어져 사물과 자신에게 있어 할 수 있는 도리를 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 바탕에서 정치와 교화를 행한다면 마치 바람에 풀이 쓸려 넘어지듯 구름이 몰려가듯 효과가 바로 나타날 것입니다. 위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면 아랫사람 가운데는 그보다 더 열성적인 사람이 있게 되는 법입니다. 왕의 학문은 보통 사람의 학문과 다른 점이 있고, 실행함에 있어서는 더욱 중요합니다. 구경 가운데 주역은 때에 따라 옳게 행하는 뜻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책입니다. 지금 정사는 임금님의 정신이 나타나지 않고 은혜로 봐주는 것이 많습니다. 명령은 정상적으로 나오는 것은 없고 모두 어긋나게 나오고, 기강이 서지 않은지 몇 대가 되었습니다. 대단한 위엄으로 떨쳐 일으키지 않으면 갈래갈래 풀어 흐트러진 형세를 수습할 수 없습니다. 큰비가 내리듯 적셔주지 않으면 7년 가뭄에 말라비틀어진 풀을 소생시킬 수 없습니다. 반드시 훌륭한 정승을 얻어 상하가 한 마음으로 협동하여 한 배를 탄 사람들처럼 된 뒤에 라야 이 어지럽고 다급한 현실을 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등용하는 일은 임금님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임금님 자신이 모범을 보여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임금님 자신이 수양되어 있지 않으면 임금님에게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생길 수 없습니다. 눈이 없으면 누가 착하고 누가 나쁜지 알 수가 없어 사람을 등용하고 버리는 일을 잘못하게 됩니다. 인재를 임금이 알아서 쓰지 못한다면, 임금은 누구와 함께 정치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옛날 나라의 형편을 잘 파악하는 사람은 그 나라의 무력이 강한가 약한가를 보지 않고 그 나라가 인재를 잘 쓰는가 못 쓰는가를 보았습니다. 천학 매우 어지러우냐 잘 다스려지느냐는 다 사람의 손에 달려 있지 다른 곳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즉 임금이 몸을 닦는 것은 정치가 나오는 근본이고 어진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정치를 하는 근본입니다. 또 몸을 닦는 것은 인재를 등용하는 근본입니다. 온갖 훌륭한 말이, 자기 몸을 닦고 인재를 등용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을 등용하는 일이 잘못되면 군자다운 사람이 초야에 있게 되고 소인이 나라를 마음대로 하게 됩니다. 옛날부터 권세 있는 신하가 나라를 마음대로 하거나 외척이 나라를 마음대로 하는 일은 간혹 있었고 여인이나 내시가 나라를 마음대로 하는 일도 간혹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서리(胥吏)가 나라를 마음대로 하는 일은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정치가 대부에게서 나와도 안 되는데 하물며 아전에게서 나와서야 되겠습니까? 당당한 큰 제후의 나라에서 200년 동안 지속해 온 왕업을 많은 공경대부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서 아전들에게 넘겨준단 말입니까? 이런 일은 너무도 부끄러워 소의 귀에도 들리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군민(軍民)에 관한 여러 가지 정치와 나라의 기무(機務)가 모두 아전들의 손에서 나옵니다. 세금으로 바치는 베나 곡식도 우수리를 더 얹지 않으면 통하지 않습니다. 대궐로는 재물이 모여들지 몰라도 팔도에서는 민심이 흩어질 대로 흩어져 열에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각 고을을 아전들 각자가 자기들끼리 할당하여 마치 자기 사유물인 양 문서로 작성하여 자손들에게 물려주기까지 합니다. 각 지방에서 바치던 특산물을 일절 바치지 못하게 하여 지금까지 특산물을 바쳐왔던 사람들은 온 가족이 가산을 팔아 아전들에게 뇌물을 바치는데 100배 정도로 많이 바치지 않으면 아전들이 받지를 않습니다. 한번은 그렇게 바칠 수 있지만 계속 그렇게 할 수 없어 도망가는 사람들이 속출합니다. 어쩌다가 여러 왕조를 거쳐 지속되어온 고을과 백성들이 바친 특산물은 날다람쥐 같은 아전들이 나누어 가지게 되었는지요? 전하가 다스리는 한 나라의 재산이 도리어 아전들의 방납하는 물건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비록 옛날에 나라를 가로챈 왕망이나 동탁같은 간신들도 이런 짓을 한 적이 없고, 망한 나라도 이런 적은 없었습니다. 아전들이 이런 짓을 하고서도 만족하지 않으니 이들은 나아가 임금님의 내탕고 마저도 훔칠 것입니다. 나라에 비축해둔 것이 조금도 없다면 그 나라는 나라가 아닙니다. 임금 바로 아래에 도적이 가득 차 있고 나라는 텅텅 빈 껍데기만 끌어안고 있습니다. 온 조정의 관리들이 목욕재개하고서 멋대로 날뛰는 이런 아전들을 쳐 없애야 합니다. 혹 힘이 부족하다면 사방에 호소해서 왕을 위해서 군사를 동원해야 합니다. 편안히 먹고 자고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어떤 좀도둑이 있다면 잡아죽이는 데 하루도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만, 아전들이 도적이 되어 각 관청의 아전들끼리 서로 짜고서 나라의 심장부를 차지하여 나라의 혈맥을 해치고 있으니 나라를 망친 뒤에 라야 그칠 것입니다. 그런데도 나라의 법을 맡은 관리들은 따져 묻거나 심문하지도 않습니다. 혹 어떤 관리가 규찰하려고 하면 아전들의 농간에 의해 견책을 받거나 파면되고 마니 뭇 관리들은 팔짱을 끼고서 녹만 받아먹고 아전들의 비위나 맞추며 지낼 뿐입니다. 아전들이 믿는 데가 없다면 어찌 이렇게 기탄 없이 멋대로 날뛸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것을 두고 초나라 왕이 말한, "총애 받는 도둑이 있어 제거할 수 없다"는 격입니다. 약은 토끼가 도망갈 굴을 세 개나 준비하듯이 냇가의 조개가 껍질 속에 몸을 감추듯, 아전들이 남을 해치고 온갖 일을 꾸며대고 있는데도 나라에서도 다스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아전들과 한통속이 되어 뒤를 봐주고 있는 관리들은 과연 어떤 사람인지요? 전하께서 벌컥 노하셔서 기강을 떨쳐 재상들을 불러모아 그 원인을 따져 묻고, 임금님의 뜻으로 결단해서 나쁜 무리들을 완전히 제거하고 백성들의 뜻을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언관(言官)들이 처벌해야 한다고 간쟁(諫諍)한 뒤에야 마지못해서 처벌한다면 누가 착한지 누가 악한지 누가 옳은지 누가 그른지를 임금님이 파악하지 못하여 결국 임금의 도리를 잃게 됩니다. 임금이 임금의 도리를 잃고서도 백성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임금이 밝은 덕을 밝히면 사물을 보는 눈이 거울처럼 밝아지게 되어 비추지 않는 물건이 없습니다. 임금이 그렇게 된 뒤에 덕과 위엄을 가하면 백성들에게 바람에 풀과 나무가 쓸려 넘어지듯 그 영향이 미칩니다. 임금이 바르게 다스리면 백성들은 임금의 명령을 열심히 받들기에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때가 되면 어찌 간사한 사람이 한 사람인들 용납될 수 있겠습니까? 정치를 어지럽히는 높은 벼슬아치에게는 정해진 형벌이 있습니다. 윤원형 같은 권세 있는 간신도 옳게 처벌했는데 하물며 여우나 쥐새끼 같은 이런 아전들이야 형틀에 그 피를 묻힐 것도 없습니다. 한 차례 뇌성과 비바람이 몰아치듯 한 번 임금님의 위엄을 펴시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입니다. 임금이 위에서 몸을 닦으면 아래에서는 나라가 잘 다스려질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벼슬하는 사람 가운데 훌륭한 재상 감이나 부지런히 일하는 인재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간신들은 자기들의 뜻에 거슬리는 사람들은 제거하면서도 간사한 아전들이 나라를 좀먹고 있는 것은 용납하고 있으니, 이들은 자기 일신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지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은 깊은 산골에서 쓸쓸하게 살며 아래위로 나라의 형세를 살펴보고 탄식하다가 눈물을 흘린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신은 전하와 군신의 관계를 맺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임금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탄식하다가 눈물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관계는 얕으면서 깊은 관계의 말을 하는 것은 실로 신에게 죄가 있다 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건대, 이 몸이 이 땅에서 나는 곡식을 먹으며 살고 있고, 여러 대를 이 땅에 사는 백성인 데다가 외람 되게도 3대에 걸쳐서 임금님이 벼슬하러 나오라고 부른 징사(徵士)가 되었습니다. 주상전하께서 부르시는데 어찌 한마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옛날 주나라의 어떤 홀어미는 베를 짜다가 베틀에 씨줄이 떨어진 것은 걱정하지 않고 나랏일을 걱정했다고 합니다. 신이 전날에 상소할 때 바쳤던 '구급' 두 글자에 대해서 전하께서 불 속에서 사람을 끄집어내듯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듯 급히 서두르신다는 소문을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전하께서는 다만 "늙은 선비가 강직한 체하려고 해보는 소리일 뿐이니 생각을 움직여볼 것도 없다"라고 생각하고 계신 듯합니다. 하물며 제가 아뢴 임금의 덕에 관한 말이 옛 사람들이 이미 아뢴 말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음에 있어서이겠습니까? 그러나 궤도를 경유하지 않으면 나아갈 길이 없는 법입니다. 임금의 덕을 밝히지 않고서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는 것은 마치 배도 없이 바다를 건너려고 하는 것과 같으니, 배도 없이 바다를 건너려고 하면 물에 빠져 죽을 뿐입니다. 지금 나라의 사정은 신이 전날 상소하던 때보다 훨씬 더 급박합니다. 전하께서 만약 신의 말을 버리지 않고 너그럽게 수용하신다면 신은 전하의 용상 아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 꼭 신의 늙고 추한 모습을 본 뒤에라야 신을 썼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 들으니, 임금을 섬기는 사람들도 형편을 살펴본 뒤에 벼슬하러 들어간다고 하는데, 전하는 어떤 임금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전하께서 만약 신이 한 말을 좋아하지 않으시면서 한갓 신을 만나려고만 하신다면 헛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전하의 사람 알아보는 눈이 밝은지 어두운지에 따라 앞날의 정치에 득실을 예측하고자 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임금님께서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삼가 상소하는 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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